계획 오류, 왜 일은 자꾸 예상보다 오래 걸릴까
"34일 예상이 55일로" 계획 오류, 의지보다 예측의 문제였어요
1994년 캐나다 심리학자 로저 뷸러(Roger Buehler) 연구팀이 졸업논문을 앞둔 심리학과 학생 37명에게 언제쯤 끝날 것 같냐고 물었는데, 평균 예상은 33.9일이었고 실제로는 평균 55.5일이 걸렸어요. 한 달 조금 넘으면 된다던 일이 두 달 가까이로 늘어난 거예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향을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불러요. 이름만 보면 계획을 잘못 세우는 실수 같지만, 정확히는 끝나는 시점을 내다보는 예측이 한쪽으로 기우는 현상에 가까워요.
이번 주 안에 끝내겠다고 해 놓고 또 다음 주로 밀린 일이 하나쯤 떠오른다면, 의지가 약해서라기보다 처음 잡은 예측부터 빗나갔을 가능성도 있어요. 이 글에서는 계획 오류가 정확히 뭔지, 알면서도 왜 반복되는지, 그리고 제가 책 정리 일정을 몇 번 놓친 뒤 예측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봤는지를 정리해 볼게요.
계획 오류란? 지난번에 늦은 걸 알면서도 또 낙관하는 심리
계획 오류는 내 일이 끝나는 데 걸릴 시간을 실제보다 짧게 잡는 경향인데, 핵심은 비슷한 일이 예전에 늦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만큼은 다를 거라고 믿는다는 점이에요. 그냥 몰라서 틀리는 게 아니라, 아는데도 틀린다는 거죠. 그리고 이 낙관은 내 일에만 강하게 나타난다는 특징도 있는데, 이 부분은 아래에서 따로 볼게요.
이 이름을 처음 붙인 건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로, 1979년 직관적 예측의 편향을 다룬 논문에서였어요. 그 뒤 실제 사람들의 예측을 숫자로 확인한 대표 연구가 앞에서 말한 뷸러 연구팀의 실험이에요. 학생들은 평소 예상뿐 아니라 모든 게 잘 풀릴 때와 모든 게 꼬일 때의 일수도 함께 적었는데,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같은 논문의 다른 실험들에서도 학교 과제뿐 아니라 일상적인 일까지 비슷한 방향의 낙관이 반복해서 나타났어요.
| 예측 종류 |
평균 일수 | 실제보다 짧게 잡은 정도 |
|---|---|---|
| 모든 게 잘 풀릴 때 |
27.4일 | 약 28일 |
| 평소 예상 | 33.9일 | 약 22일 |
| 모든 게 꼬일 때 |
48.6일 | 약 7일 |
| 실제 완료 | 55.5일 | - |
여기서 좀 의외였던 건 맨 아래에서 두 번째 줄이에요. 최악을 가정한 숫자마저 실제보다 일주일 가까이 짧았거든요. 자기가 예상한 날짜 안에 끝낸 학생은 약 30%였는데, 10명 중 3명 정도만 약속을 지킨 셈이에요.
이 개념을 연구한 당사자도 피해 가지 못했어요.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원저 2011)에서 교과서 집필 팀을 꾸렸을 때 다들 2년 안팎이면 된다고 봤는데, 비슷한 팀들의 기록을 물어보니 상당수는 끝내지 못했고 끝낸 팀도 7~1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적었어요. 그 교과서는 결국 8년 만에 마무리됐다고 해요. 2003년에는 카너먼과 댄 로발로(Dan Lovallo)가 이 개념을 시간뿐 아니라 비용과 위험까지 실제보다 작게 보는 경향으로 넓혀서 설명하기도 했어요. 공사비가 처음 견적보다 불어나는 일도 같은 줄기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주말 이틀이면 된다던 책 정리가 3주 걸린 이야기
저한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300쪽 정도 되는 심리학 책을 다 읽고 나서, 밑줄 친 부분을 정리 노트로 옮기는 작업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이미 읽은 책이고 포스트잇도 붙여 놨으니 토요일 오후랑 일요일이면 충분하다고 봤죠.
근데 막상 시작하니까 포스트잇 붙인 페이지에서 왜 붙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 곳이 절반이었어요. 다시 읽어야 했고, 책에서 인용한 연구가 궁금해서 원문을 찾아보다가 관련 논문 몇 개를 더 열었고... 그러다 보니 첫 주말이 끝났을 때 정리된 건 앞쪽 3분의 1 정도였어요. 그 주에 야근이 이틀 끼면서 평일엔 손도 못 댔고요. 중간에 논문 하나 읽다가 거기 인용된 다른 연구까지 따라가느라 저녁 하나를 통째로 쓴 날도 있었는데, 그날 노트에 남은 건 두 줄이었어요.
결국 3주가 걸렸어요.
처음엔 제가 게을러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3주 동안 실제로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을 대충 따져 보니 열 몇 시간은 되더라고요. 놀았다기보다 일 자체가 제 머릿속 크기보다 컸던 거예요. 이틀짜리 계획이 달력으로 열 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실제 작업 시간으로 보면 두세 배 차이였어요.
이게 좀 민망한 대목인데, 그 전에도 책 정리를 두 번 해봤고 두 번 다 예상보다 늦었어요. 그걸 분명히 기억하면서도 이번엔 메모가 잘 돼 있으니까 빨리 끝나겠지 했던 거예요. 앞에서 말한 계획 오류의 정의, 그러니까 과거에 늦은 걸 알면서도 이번엔 다를 거라 믿는 모습이 딱 그대로였어요. 근데 그때는 이게 무슨 현상인지 몰랐으니, 늦어질 때마다 탓할 대상이 저 자신밖에 없었던 거죠.
일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이유, 머릿속엔 순조로운 미래만 있어서
뷸러 연구팀은 학생들에게 예측하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게 했는데, 대부분이 앞으로 어떤 순서로 일을 해 나갈지에 대한 이야기였고 예전 비슷한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꺼낸 경우는 적었다고 해요. 머릿속 시뮬레이션에는 일 자체만 들어 있고, 중간에 끼어드는 야근이나 다시 읽어야 하는 페이지 같은 건 잘 안 들어간다는 얘기예요.
과거 기록이 떠올라도 힘을 못 쓰는 이유도 있어요. 연구진은 사람들이 예전에 늦었던 일을 그때만의 특별한 사정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어요. 지난번엔 갑자기 아파서, 그때는 회사 일이 몰려서. 하나하나는 사실일 수 있지만, 그런 변수가 매번 하나씩은 생긴다는 점은 예측에 반영되지 않는 거예요.
바라는 마음도 한몫해요. 뷸러 연구진은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예측이 그 바람 쪽으로 끌려간다는 점도 함께 짚었어요. 마감이 다가올수록 이번 주 안에는 되겠지 하는 숫자가 나오는 게, 근거라기보다 희망이 섞인 결과일 수 있다는 얘기예요. 저도 정리 노트를 빨리 블로그에 올리고 싶었던 마음이 이틀이라는 숫자를 만들었던 것 같고요.
흥미로운 건 남의 일을 예측할 때는 이 낙관이 약해진다는 점이에요. 같은 연구에서 다른 사람의 완료 시점을 맞혀 보게 하자 오히려 늦게 잡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해요. 친구가 이사하면 짐 정리에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하면서, 제 책 정리는 이틀이면 된다고 했던 거랑 비슷해요.
카너먼은 이걸 안에서 보는 관점과 바깥에서 보는 관점으로 나눠 설명해요. 안에서 보는 관점이 이번 일의 단계를 하나씩 그려 보는 방식이라면, 바깥에서 보는 관점은 이런 종류의 일이 보통 얼마나 걸렸는지 기록부터 확인하는 방식이에요. 비유하자면 지도 앱 예상 시간 대신 지난주 실제 퇴근길에 걸린 시간을 보는 쪽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도 앱은 신호가 다 잘 맞는 길을 보여 주지만, 지난주 기록에는 공사 구간과 막히는 사거리까지 다 들어 있으니까요. 사람의 예측은 대개 앞의 방식으로 흘러가기 쉽다는 게 이 설명의 핵심이에요.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게 있어요. 일이 늦어지는 이유로 흔히 미루기를 떠올리는데, 미루는 심리는 앞선 글에서 따로 다뤘듯 해야 할 일을 피하고 시작을 늦추는 쪽이에요. 계획 오류는 성실하게 바로 시작해도 생겨요. 제 책 정리도 토요일 오후에 바로 앉았는데 늦었으니까요. 둘이 겹칠 때도 있지만, 늦어진 원인이 의지 쪽인지 예측 쪽인지를 나눠 보면 대처도 달라진다고 봐요.
계획 오류 줄이는 법, 예측 방식을 바꿔본 뒤 달라진 것
그다음 책을 정리할 때는 두 가지를 바꿔 봤어요. 첫 번째는 예상 시간을 정하기 전에 지난 기록부터 본 거예요. 이전 정리 세 번이 각각 2주, 2주 반, 3주 걸렸으니, 이번 책이 아무리 만만해 보여도 일단 2주 반을 기본값으로 놨어요. 바깥에서 보는 관점을 아주 작게 흉내 낸 셈이에요.
두 번째는 일을 쪼개서 적어 보는 거였어요.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와 매트 에반스(Matt Evans)의 2004년 연구에서는 데이트 준비, 연말 선물 쇼핑, 문서 서식 정리, 음식 준비 같은 일을 세부 단계로 나눠 적게 하자 예상 시간이 길어지고 실제에 더 가까워졌다고 해요. 저도 정리 작업을 다시 읽기, 원문 확인, 노트 옮기기, 마지막 훑어보기로 나눠 보니 원문 확인 칸이 생각보다 컸어요.
다만 쪼개기가 늘 통하는 건 아니에요. 뷸러 연구팀이 참여한 2016년 연구에서는 이 방법을 시험한 결과들이 다소 엇갈린다고 짚었고, 크루거와 에반스 연구에서도 효과는 여러 단계로 이뤄진 일에서 주로 나타났어요. 그래서 저는 쪼개기를 정답으로 보기보다, 빠뜨린 단계가 없는지 확인하는 점검표 정도로 쓰고 있어요.
결과는 2주 반 예상에 3주 조금 넘게 걸렸어요. 또 늦었어요. 이 정도 신경 썼으면 맞출 줄 알았는데 좀 허탈하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틀 잡고 3주 걸리던 때와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줄었고, 무엇보다 늦어지는 동안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자책이 거의 없었어요. 이게 좀 의외로 컸어요. 처음부터 그 정도 걸릴 수 있다고 알고 시작했으니까요. 그 뒤로는 작업이 끝날 때마다 실제로 며칠 걸렸는지 다이어리 구석에 한 줄씩 적어 두는데, 이 기록이 쌓일수록 다음 예측의 기준점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느낌이에요.
계획이 틀렸다고 내가 틀린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계획 오류는 과거에 늦었던 걸 알면서도 이번 일만큼은 순조롭게 그려 버리는 경향이에요. 뷸러 연구의 숫자로 보면 실제 소요 시간이 평소 예상의 1.6배쯤이었는데, 이게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들어맞는 공식은 아니고 예측이 한쪽으로 기우는 방향을 보여 주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아요. 일정이 밀렸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걸 매번 의지 부족으로만 해석하는 쪽이 더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요.
할 일 목록에 이미 한 번 밀린 항목이 있고 그때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싶었다면, 의지보다 처음 숫자를 어떻게 정했는지부터 돌아볼 만해요. 다음에 일정을 잡을 일이 생기면, 위 표의 네 숫자와 지난번 비슷한 일이 실제로 며칠 걸렸는지만 나란히 놓고 봐도 출발점이 달라질 거예요.
더 찾아보고 싶다면
Buehler, Griffin, Ross (1994),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Kruger, Evans (2004),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Wiese, Buehler, Griffin (2016), Judgment and Decision Ma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