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일기 쓰기, 정말 효과가 있을까
"운동 1.5시간 늘었다"는 감사 일기 연구, 실제로 써보니
감사 일기 쓰기는 효과가 있긴 해요. 다만 연구를 찾아보고 6주 정도 직접 써본 결론은, 인생이 확 달라지는 수준이 아니라 하루 기분의 바닥이 살짝 올라오는 정도였다는 거예요.
그 '살짝'이 생각보다 쓸모 있더라고요. 문제는 처음에 너무 열심히 시작했다가 2주쯤 지나 같은 문장만 반복하고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건데, 저도 정확히 그 길을 밟았거든요.
감정관리 방법을 찾다 보면 감사 일기가 무조건 좋다는 글만 줄줄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의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글에서는 원조 격인 Emmons & McCullough(2003) 실험이 실제로 무엇을 확인했고 무엇은 확인하지 못했는지, 제가 한 번 실패하고 방법을 바꾼 과정, 그리고 기대치를 어디쯤 잡아야 실망하지 않는지를 숫자가 말해주는 만큼만 정리해봤어요.
감사 일기 효과, 원조 연구는 세 번의 실험이었어요
감사 일기 효과를 다룬 연구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건 2003년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에먼스(Robert Emmons)와 마이클 매컬러프(Michael McCullough)가 성격·사회심리학 학술지(JPSP)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실험 하나가 아니라 세 개를 묶은 논문이라, 하나씩 떼어 보는 게 정확하더라고요.
첫 번째 실험은 대학생 192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10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기록하게 했어요. 한 그룹은 감사한 일을 다섯 가지까지, 다른 그룹은 짜증 났던 일을, 나머지 그룹은 그냥 있었던 일을 적었고요. 감사 그룹은 삶 전반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다음 주를 더 낙관적으로 내다봤습니다.
눈에 띄는 건 운동량이에요. 감사 그룹이 짜증 기록 그룹보다 일주일에 약 1.5시간 더 운동했다고 답했는데, 하루로 나누면 13분 남짓 더 걸은 셈이거든요. 감사한 일을 적었을 뿐인데 몸을 더 움직였다는 게 처음엔 좀 의아했어요.
근데 두 번째 실험에서는 그림이 조금 달라져요. 이번엔 2주 동안 매일 쓰게 했는데 운동 효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감사 그룹이 누군가를 도왔다고 답한 경우가 더 많았고, 비교 조건을 '남보다 내가 나은 점 적기'로 바꾸자 일부 지표에서는 차이가 줄었어요. (이 대목은 감사 일기를 소개하는 글에서 거의 안 보이더라고요.)
세 번째 실험은 신경근육 질환을 가진 성인 65명이 21일 동안 매일 기록하는 방식이었어요. 감사 그룹은 긍정적인 기분과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고, 잠을 더 오래 자고 개운하게 깼다는 응답도 많았습니다.
연구진이 직접 쓴 결론은 꽤 신중해요. 모든 지표가 좋아진 건 아니었고, 세 실험에서 가장 꾸준하게 나온 결과는 '긍정적인 기분'이었다는 거죠. 솔직히 저는 이 문장 덕분에 오히려 믿음이 갔어요. 다 좋아졌다고 하면 그게 더 수상하잖아요.
매일 다섯 줄로 시작했다가 열흘 만에 멈춘 이유
처음엔 두 번째 실험처럼 매일 밤 다섯 가지를 쓰기로 했어요. 효과가 있었다니까 많이, 자주 쓸수록 좋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첫 사흘은 괜찮았어요. 퇴근길에 비가 그쳐 있었던 것, 동료가 말없이 커피를 놓고 간 것, 오랜만에 엄마랑 길게 통화한 것. 적다 보면 하루를 한 번 더 천천히 지나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문제는 열흘쯤 지나서였어요. 노트를 넘겨보니 '건강해서 감사', '가족이 있어서 감사', '따뜻한 집에 감사'가 거의 매일 똑같이 적혀 있었거든요. 다섯 칸을 채우려고 머리를 짜내다 보니 감사가 아니라 숙제가 돼버린 거예요.
이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자기 다이어리 앱에도 감사 일기 칸이 있는데 한 달째 비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던 거죠.
나중에 찾아보니 비슷한 지점을 짚은 연구가 있었어요.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 연구팀이 2005년 논문에서 소개한 실험인데, 감사한 일을 일주일에 한 번 적은 그룹은 행복감이 올라간 반면 일주일에 세 번 적은 그룹에서는 그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다고 해요. 너무 자주 하면 익숙해져서 감흥이 무뎌진다는 해석이 붙어 있었고요.
한 번의 실험이라 이걸 정답처럼 받아들이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제 노트에서 벌어진 일과 너무 닮아서... 2주 차가 끝날 무렵 일기를 한 번 덮었어요.
감사 일기 쓰는 법을 바꾸고 나서 달라진 것
결론부터 말하면 횟수는 줄이고 한 줄의 밀도를 높였더니 오래 갔어요. 2주 정도 쉬다가 다시 시작할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해진 요일 없이 하루가 좀 무거웠던 날 위주로 쓰기로 했거든요.
개수도 하나로 줄였어요. 대신 그 하나를 장면으로 적었고요. '동료가 커피를 사줬다' 대신 '회의 끝나고 기운 빠져 있을 때 동료가 커피를 두고 가서 오후를 버틸 수 있었다'처럼, 무엇이 왜 고마웠는지까지 쓰는 식이었죠.
쓰는 양은 줄었는데 한 줄에 드는 시간은 오히려 길어졌어요.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게 또 신기한 게, 물건이나 상황보다 사람에 대한 감사가 훨씬 오래 남더라고요. 일주일 뒤에 다시 읽어도 그때 기분이 꽤 선명하게 돌아왔어요.
그럼 쓸 게 정말 하나도 없는 날은 어떻게 했냐면, 그냥 안 썼어요. 억지로 짜낸 감사는 앞에서 말한 숙제 모드로 돌아가는 지름길이었거든요. 아침에 쓸지 밤에 쓸지도 고민했는데, 저한테는 시간대보다 '하루를 돌아볼 여유가 있느냐'가 더 중요했어요. 그래서 대부분 잠들기 전 침대에서 썼고요.
혹시 감사 일기를 시작했다가 몇 장 못 넘기고 덮어둔 노트, 서랍에 하나쯤 있지 않으세요?
6주쯤 지나서 느낀 변화는 거창하지 않아요. 기분이 바닥인 날에도 '그래도 오늘 하나는 있었지' 하고 하루를 닫을 수 있게 된 정도. 잠들기 전에 곱씹던 짜증이 조금 짧아진 것 같기도 한데, 이건 재본 게 아니라 제 느낌이라 딱 그만큼만 믿어주세요.
감사 일기 효과, 기대치는 이 정도로 잡는 게 맞아요
원조 연구 이후 비슷한 실험이 수십 개 쌓였는데, 이걸 모아서 본 메타분석은 꽤 냉정한 편입니다. Davis 외(2016)가 상담심리학 학술지(Journal of Counseling Psychology)에 낸 분석을 보면, 아무것도 안 한 그룹과 비교했을 때는 감사 개입이 웰빙을 높였지만 평범한 일기 쓰기처럼 '뭔가를 하는' 비교 그룹과 견주면 차이가 작아지거나 뚜렷하지 않았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효과의 상당 부분이 '감사'라는 단어보다 하루를 돌아보고 글로 적는 행위 자체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거예요. 처음엔 좀 김이 빠졌는데, 생각해보면 나쁜 소식은 아니더라고요. 어떤 형태든 기록하는 습관이 의미 있다는 얘기니까요.
우울·불안 쪽 수치도 비슷합니다. Cregg & Cheavens(2021)가 27개 연구, 3,675명을 모아 분석했더니 감사 개입이 우울·불안 증상에 미치는 효과는 작은 수준이었어요. 그 효과 크기를 제가 대략 환산해보면, 감사 일기를 쓴 사람과 안 쓴 사람을 한 명씩 무작위로 뽑았을 때 쓴 쪽이 덜 우울할 확률이 58% 안팎이에요. 동전 던지기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죠. (어디까지나 감을 잡기 위한 환산이에요.)
그래서 감사 일기는 우울증 치료가 아니에요. 기분이 2주 넘게 계속 가라앉아 있거나 일상이 버거운 상태라면, 일기보다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센터 같은 전문가의 도움이 먼저입니다.
하나 더, 감사 일기가 안 맞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힘든 시기에 '그래도 감사해야지'가 내 감정을 꾹 누르는 쪽으로 작동하면 오히려 더 지치거든요. 그럴 땐 감사 대신 오늘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는 기록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성향마다 맞는 도구가 다른 거니까요.
감사할 게 없는 날이 있어도 괜찮더라고요
원조 연구가 가장 꾸준히 확인한 건 긍정적인 기분이 조금 올라간다는 것이었고, 이후 연구들은 그 효과가 작다는 걸 반복해서 보여줬어요. 저한테는 그 작은 차이가 하루를 닫는 방식 하나를 바꿔준 셈이고요.
매일 다섯 줄을 쓰다 지친 분이라면 횟수부터 줄여보고, 아직 시작 전이라면 이번 주에 딱 한 번 한 장면만 적어보는 정도로 충분할 것 같아요.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3분이면 한 달을 다 합쳐도 드라마 한 편보다 짧은 시간이거든요. 그 정도 투자로 기분의 바닥을 조금 올려보는 실험이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덜하더라고요. 혹시 감사 일기를 써본 적이 있다면, 어떤 한 줄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는지 궁금해요.
숫자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 UC 버클리 Greater Good Science Center - Emmons & McCullough(2003) 원문
· 미국심리학회(APA) - Davis 외(2016) 감사 개입 메타분석
·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